- 줄거리 요약: 글쓰기 대회 주제가 '가족'이었다
- 내 경험: 나도 어릴 때 가족에 대해 솔직하지 못했다
- 평점 및 비평: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초청한 5학년 소녀의 여름

"가족은 무엇일까요? 저에게 가족은 물음표에요." 초등학교 5학년 소녀가 글쓰기 대회를 앞두고 이 문장을 씁니다. 이지은 감독의 〈비밀의 언덕〉(2023)은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예민한 5학년 소녀 명은(문승아)이 글쓰기 대회를 계기로 자신이 숨기고 싶었던 진실과 마주하는 이야기입니다.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초청,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CGV아트하우스 창작지원상, 제4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영평10선 선정. 씨네21 전문가 별점 7.20점, 관객 별점 8.00점. 어른이 봐야 더 마음이 무거워지는 영화, 지금 들여다보겠습니다.
줄거리 요약: 글쓰기 대회 주제가 '가족'이었다
명은(문승아)은 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하며,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아이입니다. 어느 여름, 학교에서 글쓰기 대회 공고가 붙습니다. 주제는 '가족'. 명은은 고민에 빠집니다. 쓰고 싶은 말이 있지만, 써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족 안에 숨기고 싶은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명은의 엄마 경희(장선)는 식당을 운영합니다. 아빠는 없습니다. 정확히는 있는데 없는 것처럼 지내는 상황입니다. 명은의 유일한 친구이자 같은 반 친구 애란(임선우)은 명은보다 더 복잡한 가정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두 아이는 서로의 비밀을 조금씩 알아가면서도, 완전히 털어놓지는 못합니다.
글쓰기 대회 마감일이 다가오면서 명은은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모두가 보기 좋은 이야기를 쓸 것인가, 아니면 진짜 이야기를 쓸 것인가. 그 선택이 명은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영화는 끝까지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내 경험: 나도 어릴 때 가족에 대해 솔직하지 못했다
〈비밀의 언덕〉을 본 건 마흔 중반이었습니다. 아이들 영화라는 얘기를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봤는데, 명은이 글쓰기 대회 원고지 앞에서 오래 멈춰 있는 장면에서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저도 어릴 때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우리 가족'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써야 하는 과제가 있을 때마다 곤란했습니다.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쓰면 되는데, 왜인지 손이 잘 안 움직였습니다. 집안 사정을 모두가 읽는 글에 담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있는 것처럼, 괜찮은 것처럼 썼습니다. 명은이 원고지 앞에서 망설이는 모습이 그 기억을 그대로 꺼내놨습니다.
마흔이 넘어 생각해보면, 그때 왜 솔직하게 쓰지 못했을까 싶습니다. 부끄러워서였을까, 걱정됐던 걸까. 아마 둘 다였을 겁니다. 명은이 결국 어떤 선택을 하는지, 영화를 직접 보시면 압니다. 그 선택이 아이답지 않게 무겁고, 그래서 더 오래 남았습니다.
평점 및 비평: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초청한 5학년 소녀의 여름
〈비밀의 언덕〉은 2022년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부문에 초청되며 먼저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았습니다. 이후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CGV아트하우스 창작지원상, 제19회 홍콩아시안영화제 신인상, 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 영화 창 나봄상·무주관객상, 제4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국제장편경쟁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습니다. 2023년 7월 12일 국내 개봉 후 씨네21 전문가 별점 7.20점, 관객 별점 8.00점을 기록했으며, 제4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영평10선 선정, 제32회 부일영화상 신인감독상(이지은)을 수상했습니다.
비평가들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건 아이의 시선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어른의 해석을 덧대지 않고, 명은의 시선 그대로 세상을 보여줍니다. 가정환경이 어렵다는 것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명은의 행동과 표정, 주변 상황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읽어내게 합니다. 〈우리들〉, 〈벌새〉의 계보를 잇는 한국 독립영화의 새로운 목소리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주연 문승아의 연기 역시 빠짐없이 언급됩니다. 비전문 아역 배우임에도 명은의 복잡한 내면을 눈빛 하나로 전달합니다.
다만 아쉬운 지점도 있습니다. 애란의 서사가 명은에 비해 충분히 파고들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두 아이의 관계가 더 깊이 다뤄졌다면 영화의 감정선이 더 풍부해졌을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또한 후반부의 전개가 다소 조심스럽게 마무리돼, 더 날카롭게 치고 나갈 수 있었던 순간을 비껴간다는 평도 있습니다.
왓챠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더 마음이 무거울 영화입니다. 내 아이가 혼자 감당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비밀의 언덕〉을 보고 나서 한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어릴 때 '우리 가족'을 주제로 쓴 글들이 생각났습니다. 솔직하게 쓰지 못했던 그 원고지들. 지금이라면 어떻게 썼을까 싶습니다. 좋은 영화는 오래된 기억을 다시 꺼내게 만듭니다. 〈비밀의 언덕〉이 딱 그런 영화였습니다. 조용히, 혼자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