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줄거리 요약: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자가 됐다
- 내 경험: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무너지는 일인지
- 평점 및 비평: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여자판 파수꾼이라 불린 이유
"친구가 사라지고, 모두가 나를 의심한다." 이 한 문장이 영화의 전부입니다. 김의석 감독의 〈죄 많은 소녀〉(2018)는 같은 반 친구 경민의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영희(전여빈)가 가해자로 지목되는 이야기입니다. 결백을 주장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영희는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합니다. 나홍진 감독 〈곡성〉 연출부 출신 김의석 감독의 장편 데뷔작.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올해의 배우상(전여빈), 스위스 프리부르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시체스 영화제 초청. 지금 들여다보겠습니다.
줄거리 요약: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자가 됐다
영희(전여빈)는 같은 반 친구 경민과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경민이 실종됐습니다. 영희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모두가 영희를 가해자로 지목하기 시작합니다. 경민의 어머니(서영화), 형사, 담임 선생님, 친구들까지. 영희는 계속 결백을 주장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습니다.
영화는 그 압박 속에서 영희가 무너져가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친한 줄 알았던 친구 한솔(고원희)마저 영희에게 불리한 증언을 내놓습니다. 경민의 어머니는 분노와 죄책감을 영희에게 쏟아냅니다. 영희는 혼자입니다. 결백을 증명하려 할수록 더 깊이 고립됩니다.
영화 전반부는 영희를 중심으로, 후반부는 경민의 어머니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잃고, 각자의 방식으로 무너집니다. 김의석 감독은 이 영화를 수년 전 친한 친구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2년에 걸쳐 썼습니다. 극 중 인물과 이야기는 허구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은 날것 그대로 담았다고 했습니다.
내 경험: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무너지는 일인지
〈죄 많은 소녀〉를 본 건 마흔 즈음이었습니다. 영희가 결백을 주장하는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장면들을 보면서, 그 감각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규모는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었거든요.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내가 하지 않은 실수에 대해 내 쪽에서 한 것처럼 상황이 흘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설명하면 할수록 더 의심받는 느낌이 들었고, 결국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넘어가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그게 더 힘들었어요. 내 말이 아무 힘이 없다는 느낌. 영희가 반복해서 결백을 주장하는데도 아무 소용이 없는 그 장면들에서 그 기억이 올라왔습니다.
마흔이 넘어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영희가 아무 말도 못하고 혼자 감당하는 게,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반응이라는 것. 아무리 말해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사람은 그냥 닫혀버리더라고요. 영희도 그랬던 것 같아요.
평점 및 비평: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여자판 파수꾼이라 불린 이유
〈죄 많은 소녀〉는 2018년 9월 13일 개봉했습니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올해의 배우상(전여빈),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전여빈), 제51회 시체스 영화제 초청, 스위스 프리부르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뉴욕 아시안 영화제 초청 등 국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전여빈은 이 영화를 통해 충무로에서 주목받는 신인으로 떠올랐고, 이후 〈빈센조〉, 〈지옥〉 등으로 성장한 배우입니다.
비평가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건 '여자판 파수꾼'이라는 수식어입니다. 10대가 주인공이라는 점, 친구와 관련된 사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비교됩니다. 다만 실제 전개 방식은 파수꾼과 차이가 있습니다. 파수꾼이 세 남자아이의 기억을 교차하는 방식이라면, 이 영화는 영희와 경민 어머니라는 두 인물에게 감독의 자아를 동시에 투영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선우정아가 맡은 영화음악도 영화의 무게를 더하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다만 비판적 시각도 있습니다. 책임의 소재가 경민의 어머니에게 지나치게 편중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또한 소녀들의 세계라는 소재에 여러 주제를 한꺼번에 담으려다 보니 영화가 다소 복잡해졌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감독의 데뷔작임을 감안하더라도, 주제를 조금 더 좁혔다면 더 강렬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왓챠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불편하고 무거운 영화입니다. 그래도 전여빈이라는 배우가 이 영화에서 어떤 연기를 했는지, 지금 그 배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반드시 한 번 보셔야 합니다.
〈죄 많은 소녀〉를 보고 나서 한동안 영희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못 하고 혼자 감당해야 했던 그 시간. 그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좋은 영화는 스크린 속 인물이 오래 머릿속에 남습니다. 영희가 딱 그랬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한 번쯤 보시길 권합니다. 단, 혼자 조용히 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