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요약: 엑스레이 사진 한 장이 병원을 발칵 뒤집다
- 내 경험: 나는 의심받은 적도, 의심한 적도 있다
- 평점 및 비평: 인권영화가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가

"사람들은 왜 서로를 의심할까요?" 물고기 메기가 내레이션으로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부터 영화는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갑니다. 이옥섭 감독의 〈메기〉(2019)는 병원 엑스레이실에서 찍힌 민망한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하는 미스터리 펑키 코미디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영화 프로젝트의 열네 번째 작품으로, 이주영·구교환·문소리라는 독립영화계 최강 라인업이 뭉쳤습니다. 씨네21 관객 별점 8.25점. 웃기다가 갑자기 멈추게 되는 이 영화, 직접 들여다보겠습니다.
줄거리 요약: 엑스레이 사진 한 장이 병원을 발칵 뒤집다
마리아사랑병원 엑스레이실에서 누군가 성관계를 하다가 사진에 찍혔습니다. 다음 날 그 사진이 병원 앞마당에 걸립니다. 병원 전체가 발칵 뒤집힙니다. 간호사 윤영(이주영)은 사진 속 인물이 자신과 남자친구 성원(구교환)일지 모른다고 의심합니다. 사직서를 냈지만 부원장 이경진(문소리)이 반려합니다. 그런데 다음 날 출근해보니 윤영과 이경진 둘만 남고 아무도 출근을 안 했습니다.
황당한 설정인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상하게 빠져듭니다. 각자가 상대방을 의심하는 방식, 의심을 피하려는 방식,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관계의 균열이 코미디처럼 펼쳐지다가 어느 순간 아프게 변합니다. 물고기 메기가 내레이션으로 사건을 설명하는 구조도 독특합니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립니다.
영화가 진짜 묻는 것은 누가 사진 속 주인공인가가 아닙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의심하는가, 그리고 의심받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입니다. 웃음이 가득한 영화인데, 끝나고 나서는 웃을 수가 없습니다.
내 경험: 나는 의심받은 적도, 의심한 적도 있다
〈메기〉를 본 건 마흔 초반이었습니다. 제목도 내용도 특이하다길래 가벼운 마음으로 봤는데, 중반쯤에서 갑자기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의심받는 윤영의 표정이 남 일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비슷한 상황을 겪습니다. 아무 근거 없이 돌아다니는 소문, 내가 한 것도 아닌데 나한테 의심의 눈초리가 쏠리는 순간. 그때 그 기분이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한지는 겪어본 사람만 압니다. 반대로 저도 누군가를 먼저 의심한 적이 있습니다. 확인도 하지 않고 '저 사람이 했겠지'라고 단정 지었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영화 속 병원 직원들이 집단 결근이라는 황당한 방식으로 항의하는 장면이 웃기면서도 씁쓸했습니다. 의심의 분위기가 퍼지면 집단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과장되게, 그러나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직장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들이 나옵니다.
평점 및 비평: 인권영화가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가
〈메기〉는 2019년 9월 26일 개봉했습니다. 씨네21 전문가 별점 6.75점, 관객 별점 8.25점으로 관객과 평단 사이의 온도 차가 있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영화 프로젝트 작품이지만, 무겁거나 교훈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경쾌하고 발랄한 방식으로 의심과 신뢰라는 인권 주제를 다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옥섭 감독은 이 작품으로 "한국 독립영화계를 이끌어갈 뉴웨이브"라는 수식어를 얻었습니다.
비평가들이 주목한 건 스타일입니다. 20세기 영화 색감을 연상시키는 복고적인 톤, 물고기 메기의 내레이션이라는 독특한 구조, 재기발랄한 유머가 조화를 이룹니다. 이주영, 구교환, 문소리라는 독립영화계 최강 라인업의 연기도 빠짐없이 언급됩니다. 특히 이주영의 억울하고 당혹스러운 표정 연기는 영화의 감정선을 떠받치는 핵심입니다.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단편영화의 리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에피소드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기보다 단편들의 연작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고, 후반부로 갈수록 리듬이 흐트러진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장편 데뷔작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왓챠와 웨이브에서 바로 볼 수 있습니다. 가볍게 시작해서 오래 남는 영화를 찾는 분, 독립영화계의 새로운 스타일을 경험하고 싶은 분께 추천합니다. 단, 끝나고 나서 바로 딴 거 보지 마시고 잠깐 앉아 계세요. 그게 이 영화를 제대로 보는 방법입니다.
〈메기〉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분명 웃기는 영화인데, 끝나고 나서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직장에서 의심받았던 그 순간이 다시 떠올랐고, 내가 아무 근거 없이 누군가를 의심했던 기억도 올라왔습니다. 영화 한 편이 그런 정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꼭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끝나고 나서 나는 어느 쪽이었는지 한번 생각해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