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요약: 아버지 보험금 사기치는 삼촌과 열네 살 조카의 발칙한 동거
- 내 경험: 나는 조카 앞에서 어른다운 어른이었나
- 평점 및 비평: 전주국제영화제 넷팩상, 엄태구를 발견한 영화

"도대체 어른 맞아요?" 열네 살짜리 조카한테 이 소리를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요. 김인선 감독의 〈어른도감〉(2018)은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생면부지의 삼촌 재민(엄태구)을 만난 열네 살 경언(이재인)이 삼촌과 함께 어이없는 사기극을 벌이는 이야기입니다. 얼치기 사기꾼 삼촌과 당돌한 조카가 동네 약사를 상대로 부녀를 가장하는 이 황당한 설정.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넷팩상 수상,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 어른이 된다는 게 뭔지 모르겠는 모든 사람을 위한 영화, 지금 들여다보겠습니다.
줄거리 요약: 아버지 보험금 사기치는 삼촌과 열네 살 조카의 발칙한 동거
열네 살 경언(이재인)의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장례식장에 처음 보는 삼촌 재민(엄태구)이 나타납니다. 재민은 얼치기 사기꾼입니다. 형의 죽음을 이용해 보험금을 타낼 계획을 세우지만, 경언 앞에 남겨진 보험금을 모두 날려버립니다. 돈을 마련해야 하는 두 사람. 재민은 경언에게 황당한 제안을 합니다. 동네 약사를 상대로 부녀를 가장한 사기를 치자고.
경언은 삼촌이 못마땅합니다. 어른이라고 하기엔 너무 허술하고, 믿을 만하다고 하기엔 너무 엉망입니다. 그런데 딱히 다른 선택지도 없습니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면서 엉성한 사기극을 이어갑니다. 그 과정에서 경언은 어른의 세계가 생각보다 훨씬 허술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재민은 조카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미완성인 어른인지를 마주합니다.
영화는 두 사람의 사기극을 코미디로 그리면서도, 그 안에 어른과 아이 사이의 진지한 질문을 담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인가. 나이를 먹으면 자동으로 어른이 되는 건가. 재민과 경언은 서로에게 그 질문을 던집니다.
내 경험: 나는 조카 앞에서 어른다운 어른이었나
〈어른도감〉을 본 건 마흔 즈음이었습니다. 재민이 경언 앞에서 허둥대는 장면들을 보면서 내내 불편했습니다. 낯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조카가 있습니다. 어릴 때는 그냥 귀여운 아이였는데, 조카가 중학생이 되면서 이상하게 어색해졌습니다. 뭔가 어른스럽게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진지하게 조언하려다가 공감 못 받고 어색하게 웃고 넘기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재민이 경언 앞에서 어른인 척하려다가 번번이 들키는 장면들이 그래서 더 찔렸습니다. 나도 조카 앞에서 저랬던 것 같아서요.
마흔이 넘으면 나이는 어른인데 내면은 여전히 완성이 안 된 느낌이 있습니다. 책임은 져야 하는데 확신은 없고, 앞서가야 하는데 답은 모르고. 재민이 그 상태를 그냥 솔직하게 보여주는 캐릭터라서 오히려 공감이 됐습니다. 어른이 되는 건 자격증을 따는 게 아니라는 걸, 이 영화가 웃기게 그러나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평점 및 비평: 전주국제영화제 넷팩상, 엄태구를 발견한 영화
〈어른도감〉은 2018년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으로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을 수상했습니다. 제55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여자배우상 후보(이재인), 제20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땡그랑동전상, 제38회 하와이국제영화제 스포트라이트 온 코리아 부문, 제13회 파리한국영화제 초청, 제6회 들꽃영화상 신인배우상(이재인) 수상까지 여러 영화제에서 고르게 주목받았습니다. 씨네폭스·구글플레이·애플TV에서 볼 수 있습니다.
비평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건 두 배우의 케미입니다. 엄태구는 이 영화를 통해 얼치기 사기꾼이라는 생소한 캐릭터를 과잉 없이 소화하며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이후 〈마약왕〉, 〈강철비2〉, 드라마 〈비밀의 숲〉까지 충무로 중견 배우로 성장한 엄태구의 초기 연기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재인의 당돌하고 영리한 연기도 빠짐없이 언급됩니다. 어른들의 세계를 꿰뚫어 보는 열네 살의 눈빛이 영화 내내 살아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지점도 있습니다. 사기극이라는 장르적 설정이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흐지부지 마무리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재민과 경언의 관계 변화도 좀 더 촘촘하게 그려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졸업작품이라는 제작 환경의 한계가 군데군데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구글플레이와 애플TV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가볍게 웃으면서 보다가 끝나고 나서 '나는 어른 맞나'라는 질문을 한 번쯤 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마흔이 넘은 분들께 특히 추천합니다.
〈어른도감〉을 보고 나서 조카한테 연락했습니다. 오랜만에 밥 한번 먹자고. 조카가 좋다고 했습니다. 막상 만나면 또 어색하겠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재민처럼 미완성이어도 계속 시도하는 것, 그게 어른이 되는 방식인 것 같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