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요약: 수학여행 전날, 세미는 하은에게 고백하려 했다
- 내 경험: 하지 못한 말을 안고 살아온 시간들
- 평점 및 비평: 이동진이 2023년 한국영화 1위로 꼽은 이유

세월호 10주기.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이 말을 먼저 꺼내야 할 것 같습니다.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2023)는 수학여행 전날 밤, 친구에게 고백하려는 한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세월호를 직접 다루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 사건이 묵직하게 가슴을 짓누릅니다. 이동진 평론가가 2023년 한국영화 순위 1위로 꼽은 유일한 작품, 별점 4점 이상을 준 단 한 편의 영화. 제45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각본상 수상. 왜 이 영화가 그토록 많은 사람의 마음에 남았는지, 지금 들여다보겠습니다.
줄거리 요약: 수학여행 전날, 세미는 하은에게 고백하려 했다
고등학생 세미(박혜수)에게 하은(김시은)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친구이지만 친구 이상의 감정이 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세미는 용기를 내어 하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려 합니다. 그날 하룻밤, 두 소녀가 함께 보낸 시간을 영화는 조용히 따라갑니다.
영화의 배경은 단 하룻밤입니다. 특별한 사건도, 극적인 갈등도 없습니다. 그냥 두 아이가 걷고, 이야기하고, 서로를 바라봅니다. 그런데 그 평범한 하룻밤이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다른 무게로 다가옵니다. 세미가 하은에게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하은은 세미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이 하룻밤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영화는 세월호를 직접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내일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의 하룻밤이라는 설정이, 그제야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힙니다. 그 순간 영화관이 조용해집니다. 말이 없어집니다.
내 경험: 하지 못한 말을 안고 살아온 시간들
〈너와 나〉를 본 건 마흔 중반이었습니다. 세미가 하은에게 말을 꺼내려다 망설이는 장면들을 보면서, 하지 못한 말을 품고 살아온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졸업하고 나서 각자 바쁘게 살다 보니 연락이 뜸해졌습니다. 한번은 연락하려다가 너무 오래됐다는 생각에 그냥 덮었습니다. 그게 몇 번 반복됐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제야 연락했는데, 예전처럼 편하지가 않았습니다. 하지 못한 말들이 사이에 쌓여 있었습니다.
세미가 하은에게 말을 건네는 그 하룻밤이, 제게는 그 친구와 보낸 시간들과 겹쳐 보였습니다. 그때 더 자주 연락했더라면, 하고 싶은 말을 미루지 않았더라면. 마흔이 넘으면 그런 후회가 하나씩 쌓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평점 및 비평: 이동진이 2023년 한국영화 1위로 꼽은 이유
〈너와 나〉는 2023년 10월 개봉했습니다. 이동진 평론가가 2023년 한국영화 순위 1위로 꼽은 유일한 작품이며, 별점 4점 이상을 준 단 하나의 영화였습니다. 제45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각본상(조현철, 정미영), 제60회 백상예술대상 구찌 임팩트 어워드상을 수상했습니다. 조현철 감독은 배우로도 활동하며 〈헤어질 결심〉, 〈파친코〉 등에 출연한 인물로, 이 영화가 장편 데뷔작입니다.
비평가들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건 영화가 세월호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직접 언급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그냥 수학여행 전날 밤이라는 설정 하나로 모든 것을 담아냅니다. 전반부는 두 소녀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가고, 후반부에서 그 감정선이 전혀 다른 무게로 전환되는 구조가 탁월하다는 평가입니다. 박혜수와 김시은의 연기도 빠짐없이 언급됩니다. 말보다 눈빛으로 더 많은 것을 전달하는 두 배우의 호흡이 영화를 완성합니다.
다만 아쉬운 지점도 있습니다. 전반부의 호흡이 지나치게 느려 일부 관객에게는 집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한 리뷰어는 "훌륭하다고 하기엔 전반이 미흡하고, 미흡하다고 하기엔 후반이 훌륭한 영화"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세월호라는 소재가 퀴어 서사와 결합되는 방식이 다소 무겁게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왓챠와 웨이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전반부가 느리더라도 끝까지 보시길 권합니다. 마지막 장면 이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너와 나〉를 보고 나서 그 친구한테 연락했습니다. 오랜만에 안부를 물었고, 친구는 반가워했습니다. 늦었지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조금씩 꺼냈습니다. 좋은 영화는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듭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늘 하세요. 내일이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