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요약: 사랑을 갈망하지만 끝내 어긋나는 세 사람
- 내 경험: 나는 상대에게 어떤 것으로 알려졌을까
- 평점 및 비평: 부산국제영화제가 주목한 올해 가장 밀도 있는 영화

우리는 각자의 관계에서 솔직하고자 다짐하지만, 결국 나는 상대에게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입니다. 조희영 감독의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2025)는 미국의 개념미술가 로버트 배리의 텍스트에서 출발한 제목처럼, 인간 관계의 본질적인 오독 가능성을 담은 영화입니다. 수진, 인주, 유정이라는 세 여성이 정호라는 한 남자를 둘러싸고 엮이는 이야기. 비선형 구조로 시간을 뒤섞으며 감정의 지도를 그려가는 이 작품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본선경쟁에 오르며 "올해 가장 밀도 있는 한국영화"라는 평을 이끌어냈습니다. 2025년 8월 27일 개봉한 이 영화, 지금 들여다보겠습니다.
줄거리 요약: 사랑을 갈망하지만 끝내 어긋나는 세 사람
수진(공민정)은 애인 정호(감동환)를 두고 훈성(유의태)과 만납니다. 인주(정보람)는 정호를 짝사랑합니다. 유정(정회린)은 애인 우석(류세일)과 자주 다툽니다. 세 여자와 한 남자. 관계도는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영화는 이 관계들을 선형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영화는 이들의 감정 상태를 얼마간 보여주다가 갑자기 시간을 뒤섞어버립니다. 어제의 장면이 오늘의 배경이 되고, 주인공이었던 인물이 엑스트라가 됩니다. 누군가의 상대자가 됐다가 다시 주인공이 되는 일을 반복합니다. 우리가 서로의 삶에 등장하고 퇴장하기를 반복하는 것처럼요.
사랑을 갈망하지만 끝내 그 진의를 타진할 길이 없어 서성대는 인물들. 타인이라는 낯선 영토를 배회하다 어긋나는 관계들. 영화는 그 어긋남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냥 보여줍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당신은 상대에게 어떤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까.
내 경험: 나는 상대에게 어떤 것으로 알려졌을까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마흔이 넘어 지나온 관계들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어떻게 알았다고 생각했는지, 그리고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알았을지.
오래 사귄 사람이 있었습니다. 헤어질 때 그 사람이 한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나는 네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어." 그때는 억울했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왜 저렇게 말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도 맞았을 수 있겠다고. 내가 보여주는 나와 상대가 보는 나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국 서로에게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니까요.
마흔이 넘으면 지나온 관계들이 쌓입니다. 그 관계들을 되돌아보면 내가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하고, 또 받았는지 보입니다. 이 영화는 그 오해들을 나쁜 것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그냥 인간 관계의 본질이라고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위로가 됐습니다.
평점 및 비평: 부산국제영화제가 주목한 올해 가장 밀도 있는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는 2025년 8월 27일 개봉했습니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 오늘-비전' 부문,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본선장편경쟁, 제13회 무주산골영화제 한국장편영화경쟁, 제12회 춘천영화제에 초청됐습니다. 관객들 사이에서 "올해 가장 밀도 있는 한국영화", "시공간을 결합하는 가장 능수능란한 작품", "설명할수록 매력이 떨어질 것 같아 두려운 영화"라는 평이 나왔습니다.
비평가들은 조희영 감독의 비선형 구조 활용 방식을 높이 평가합니다. 데뷔작 〈이어지는 땅〉(2022)에서 보여준 우아하고 유려한 흐름을 이번 작품에서 한 단계 더 과감하게 밀어붙였다는 평가입니다. 인물들이 주인공과 엑스트라를 반복하는 구조가 인간 관계의 본질을 영화 형식 자체로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미학적 완성도가 높습니다. 공민정·정보람·정회린 세 배우의 섬세한 감정 표현도 빠짐없이 언급됩니다.
다만 아쉬운 지점도 있습니다. 비선형 구조가 처음에는 당혹스럽게 느껴져 진입 장벽이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정호라는 남성 인물이 세 여성 인물에 비해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또한 감정의 지도를 따라가는 데 집중하다 보니 서사적 긴장감이 다소 느슨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조희영 감독은 "인생에서 연애는 정말 중요하다고, 그리고 아름답다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믿음이 영화 전체에 흐릅니다. 연애와 관계에 관심 있는 분, 비선형 구조의 영화를 좋아하는 분께 추천합니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를 보고 나서 오래된 연락처를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어떤 것으로 알려져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나와 그들이 기억하는 나는 얼마나 다를까. 그 질문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좋은 영화는 그런 질문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