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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실직한 영화인이 장국영 귀신을 만났다-찬실이는 복도 많지(줄거리 , 내 경험,평점 및 비평)

by insutain 2026. 6. 17.
목차
  • 줄거리 요약: 집도 일도 없어진 마흔, 그래도 이상하게 복이 들어온다
  • 내 경험: 일에 올인했다가 갑자기 멈췄을 때의 그 공허함
  • 평점 및 비평: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 강말금이라는 배우를 세상에 알린 작품
찬실이는 복도 많지

"아, 망했다. 완전히 망했네." 짐을 이고 달동네를 오르면서 이 말을 내뱉는 마흔 살 여자의 표정이 웃기면서도 짠합니다.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는 오랫동안 함께 작업하던 감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하루아침에 실직한 영화 프로듀서 찬실(강말금)의 이야기입니다. 집도 없고, 남자도 없고, 일마저 끊겨버린 마흔. 그런데 이상하게 없어지고 나서야 다른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장국영 귀신까지.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 네이버 관람객 평점 8.62점. 마흔이 넘은 분이라면 한 번쯤 꼭 봐야 할 영화입니다.

줄거리 요약: 집도 일도 없어진 마흔, 그래도 이상하게 복이 들어온다

찬실(강말금)은 영화 프로듀서입니다. 20년 가까이 영화 일만 해왔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함께 작업하던 감독이 회식 자리에서 갑자기 과음으로 급사합니다. 영화는 엎어지고, 찬실은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됩니다. 나이 마흔에 남편도 애도 없고 실직자까지 된 찬실은 짐을 이고 이태원 달동네 꼭대기로 이사를 갑니다.

살길을 찾아 친한 배우 소피(윤승아)네 가사도우미로 취직합니다. 그런데 소피의 불어 선생님 영(배유람)이 누나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어느 날부터 장국영이라 우기는 비밀스러운 남자(김영민)가 찬실의 눈에만 보이기 시작합니다. 새로 이사 간 집주인 할머니 복실(윤여정)도 정이 넘칩니다.

영화는 찬실이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으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잃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의 이야기입니다. 일이 전부였던 사람이, 일이 없어지고 나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만나는 과정. 그 과정이 웃기고 따뜻하고 때로는 쓸쓸합니다.

"채워도 채워도 그런 걸로는 갈증이 가시지가 않더라고요." 윤여정이 연기하는 복실 할머니의 이 대사가 영화 전체의 핵심입니다. 일로 자신을 채우려 했던 모든 사람에게 조용히 찔리는 문장입니다.

내 경험: 일에 올인했다가 갑자기 멈췄을 때의 그 공허함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본 건 마흔 초반이었습니다. 찬실이 달동네로 이사 가는 장면을 보면서 이상하게 울컥했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였습니다.

30대 중반,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적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퇴직이었는데도, 막상 그만두고 나서 예상보다 훨씬 공허했습니다. 출근할 곳이 없어지고, 명함이 없어지고, 직함이 없어지고 나서야 그동안 내가 일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채워왔는지 보였습니다. 찬실이 "아, 망했다"고 말하는 그 장면이 그래서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공허함이 지나고 나서, 찬실처럼 이상하게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바빠서 못 만났던 사람들, 미뤄뒀던 취미들, 그리고 오랫동안 외면해온 자기 자신. 영화가 끝나고 나서 그 시절이 결국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찬실처럼요.

일이 전부였던 사람이 일을 잃었을 때의 그 허탈함. 그리고 그 허탈함 이후에 찾아오는 의외의 것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그 과정을 유머와 따뜻함으로 담아냅니다.

평점 및 비평: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 강말금이라는 배우를 세상에 알린 작품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2019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상·KBS독립영화상·CGV아트하우스상 3관왕을 수상했습니다. 2020년 3월 개봉 후 코로나 여파로 관객 28,281명에 그쳤지만, 같은 해 11월 재개봉하며 꾸준히 관객을 모았습니다. 네이버 관람객 평점 8.62점, 씨네21 전문가 별점 7.00점·관객 별점 7.50점을 기록했습니다. 티빙·웨이브·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비평가들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건 강말금의 연기입니다. 찬실이라는 인물은 단순히 실직한 중년 여성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물입니다. 강말금은 그 복잡함을 과잉 없이, 그러나 충분히 담아냅니다. 박평식 평론가가 "복덩이 강말금과 손전등을 켠 김초희"라고 평한 것이 이 영화를 가장 잘 요약합니다. 윤여정이 연기하는 복실 할머니도 빠짐없이 언급됩니다. 짧은 등장 시간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체의 온도를 책임집니다.

다만 아쉬운 지점도 있습니다. 장국영 귀신이라는 판타지 설정이 영화의 전반적인 리얼리즘 톤과 완전히 어우러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또한 영(배유람)과의 로맨스 라인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홍상수 영화 스태프 출신 감독답게 일상적인 대화와 관계 묘사가 뛰어나지만, 그 결이 홍상수와 너무 닮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김초희 감독은 이 영화를 "다시 영화를 하고 싶은 내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썼다"고 말했습니다. 그 솔직함이 영화 전체에 흐릅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영화는 언제나 오래 남습니다.

마흔 즈음에 보면 더 깊이 와닿는 영화입니다. 일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분, 잃고 나서야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던 분께 특히 추천합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보고 나서 한동안 그 시절 생각을 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뒀을 때 공허했던 그 감각, 그리고 그 이후에 찾아온 것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찬실도 그랬을 겁니다. 망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복이 들어오기 직전이었던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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