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요약: 민원 8천 건의 할매가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 내 경험: 평생 하고 싶었던 말을 끝내 못 한 사람들
- 평점 및 비평: 나문희가 3대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모두 석권한 이유

"I can speak." 미국 의회 청문회장에서 나문희가 이 세 글자를 내뱉는 순간, 극장 안은 조용해집니다. 그리고 울음이 터집니다. 김현석 감독의 〈아이 캔 스피크〉(2017)는 구청 민원 8천 건을 넣어 '도깨비 할매'로 불리는 나옥분(나문희)이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에게 영어를 배우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영어를 배우는 이유가, 영화 중반부에 드러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네이버 관람객 평점 9.24점, 누적 관객 328만 명. 청룡영화상·대종상·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 3관왕 나문희. 웃다가 울게 되는 이 영화, 지금 들여다보겠습니다.
줄거리 요약: 민원 8천 건의 할매가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옥분(나문희)은 구청에 민원 넣기로 악명 높은 '도깨비 할매'입니다. 20년간 8천 건의 민원을 넣으며 구청 직원들의 기피 대상 1호가 됐습니다. 그 앞에 원칙주의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가 부임합니다. 단호하게 규정대로만 처리하는 민재 앞에서 옥분의 민원은 번번이 막힙니다.
그러던 옥분이 어느 날 민재에게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합니다.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민재를 보고 무작정 찾아온 것입니다. 마지못해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민재와 옥분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해 갑니다. 그런데 영화 중반, 옥분이 왜 그토록 영어를 배우고 싶었는지 그 이유가 드러납니다.
옥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였습니다.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직접 증언하기 위해 영어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70년 넘게 가슴 속에 묻어뒀던 말을 세상을 향해 직접 꺼내놓기 위해.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영화는 그 과정을 코미디로 시작해 묵직한 감동으로 마무리합니다.
내 경험: 평생 하고 싶었던 말을 끝내 못 한 사람들
〈아이 캔 스피크〉를 처음 본 건 개봉 당시였습니다. 서른 중반이었고, 극장에서 봤습니다. 코미디 영화인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의회 청문회 장면에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앞에 앉은 아저씨도 훌쩍이고 있었습니다. 극장 전체가 조용했습니다.
옥분이 마이크 앞에 서는 장면을 보면서 문득 생각했습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한 적이 있었나. 억울했던 순간, 화났던 순간, 상처받은 순간에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그냥 넘겼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이유는 다양했습니다. 상황이 복잡해질까봐, 관계가 틀어질까봐, 어차피 말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을 것 같아서. 그 이유들이 옥분이 70년을 침묵한 이유와 크기는 달라도 결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흔이 넘으면 그런 말들이 더 쌓입니다. 했어야 했는데 못 한 말, 보냈어야 했는데 못 보낸 연락. 옥분처럼 그 말을 하기 위해 70년을 준비하진 않더라도, 언젠가는 내 목소리로 내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이 영화가 조용히 알려줬습니다.
평점 및 비평: 나문희가 3대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모두 석권한 이유
〈아이 캔 스피크〉는 2017년 9월 21일 개봉해 누적 관객 328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네이버 관람객 평점 9.24점이라는 경이로운 수치가 관객의 반응을 대변합니다. 나문희는 이 영화 한 편으로 청룡영화상·대종상·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모두 석권하며 한국 영화 3대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한 해에 석권하는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국제엠네스티언론 특별상도 수상했습니다.
비평가들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건 소재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무겁고 민감한 소재를 직접적인 피해 장면 없이, 유머와 감동이 공존하는 휴먼드라마로 풀어냈다는 점이 독보적이라는 평가입니다. 박평식 평론가가 6점을 준 것도 화제였는데, '소금왕'으로 유명한 그가 6점을 줬다는 건 상당한 호평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증명합니다. 이제훈과 나문희의 케미도 영화의 큰 자산입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조합이 영화 내내 웃음과 온기를 만들어냅니다.
다만 아쉬운 지점도 있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선이 다소 급하게 치달아, 더 섬세하게 다뤄질 수 있었던 순간들이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또한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만큼 극적 허용의 범위를 놓고 일부 의견이 갈리기도 합니다. 상업영화의 문법으로 위안부 문제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있었습니다.
넷플릭스와 웨이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역사 이야기가 무겁게 느껴지는 분께도 추천합니다. 이 영화는 무겁지 않습니다. 다만 끝나고 나서 오래 앉아 있게 됩니다.
〈아이 캔 스피크〉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옥분이 "I can speak"라고 말하는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살고 있는가. 그 질문이 며칠 동안 떠나지 않았습니다. 좋은 영화는 그런 질문을 남깁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오늘 꼭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단, 혼자 보시면 울 수 있으니 각오하고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