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요약: 안식처를 찾은 남자, 그 곳에 뜻밖의 방문자가 왔다
- 내 경험: 모든 것을 피해 멀리 가고 싶었던 순간들
- 평점 및 비평: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런던까지, 세계가 주목한 이유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 강원도 화천 양떼목장에 정착한 남자가 있습니다. 거기서 조용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곳까지 찾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박근영 감독의 〈정말 먼 곳〉(2021)은 강원도 목장을 안식처로 삼은 진우(강길우)에게 남자친구 현민(홍경)과 쌍둥이 여동생 은영(이상희)이 찾아오면서 균열이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초청, 파리한국영화제 관객상, 아웃페스트 로스앤젤레스 LGBTQ 영화제 초청, BFI 플레어 런던 LGBT 영화제 초청. 강원도 화천의 풍경을 시처럼 담아낸 이 작품, 지금 들여다보겠습니다.
줄거리 요약: 안식처를 찾은 남자, 그 곳에 뜻밖의 방문자가 왔다
진우(강길우)는 강원도 화천의 양떼목장에서 삽니다. 목장 주인 중만(기주봉)과 그의 딸 문경이 가족처럼 대해줍니다. 실종된 쌍둥이 여동생 은영의 딸 설(김시하)을 데리고 조용히, 세상과 거리를 두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의 무언가를 피해 온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진우의 남자친구 현민(홍경)이 목장에 나타납니다. 두 사람이 오랜 연인이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현민은 진우와 함께 이 평화로운 곳에서 설과 셋이 살기를 원합니다. 진우는 흔들립니다. 그 균형이 잡혀갈 무렵, 이번엔 실종됐던 쌍둥이 여동생 은영(이상희)이 느닷없이 나타납니다.
영화는 이 세 사람이 목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서로를 받아들이고, 부딪히고, 이해해 가는 과정을 강원도의 풍경과 함께 천천히 담습니다. 대화보다 침묵이 많고, 사건보다 풍경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여백 안에 담긴 감정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전달됩니다.
내 경험: 모든 것을 피해 멀리 가고 싶었던 순간들
〈정말 먼 곳〉을 본 건 마흔 즈음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진우의 마음이 이해됐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그 감각. 마흔이 넘으면 그런 생각이 한 번씩 옵니다.
직장을 다니던 30대 중반, 번아웃이 심하게 왔을 때 제주도로 한 달 살기를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 연락도 안 받고 지내면 나아질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처음 일주일은 좋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서울에서 해결하지 못한 것들이 제주도까지 따라왔습니다. 사람과의 관계, 미뤄둔 결정들, 해야 하는데 못 한 대화들. 진우가 강원도 목장에서도 결국 관계와 마주해야 했던 것처럼요.
영화가 끝나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멀리 가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잠시 멈추는 방법이라는 것을. 그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결국 돌아와서 마주해야 할 것들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강원도의 양떼들이 유유히 풀을 뜯는 장면들이 그 생각과 함께 오래 남았습니다.
평점 및 비평: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런던까지, 세계가 주목한 이유
〈정말 먼 곳〉은 2020년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열혈스태프상, 제24회 탈린블랙나이츠영화제, 제10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를 거쳐 2021년 제19회 피렌체한국영화제 심사위원상, 제16회 파리한국영화제 관객상, 제39회 아웃페스트 로스앤젤레스 LGBTQ 영화제, 2022년 BFI 플레어 런던 LGBT 영화제 36회까지 국내외 수많은 영화제를 순회했습니다. 제9회 들꽃영화상에서는 신인배우상(기도영)을 수상했습니다. 웨이브·구글플레이·티빙에서 볼 수 있습니다.
비평가들이 주목하는 건 영화의 질감입니다. 박근영 감독은 강원도 화천 양떼목장이라는 공간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그 자연이 안기는 우연과 신비를 영화 안에 그대로 담았습니다. 덕분에 영화 전체에 인위적이지 않은 공기가 흐릅니다. 양떼가 풀을 뜯는 소리, 바람 소리, 산 너머로 지는 해. 카메라는 그것들을 설명하지 않고 그냥 담습니다. 그 태도가 이 영화를 시처럼 만듭니다. 〈겨울밤에〉, 〈춘천, 춘천〉의 장우진 감독이 제작을 맡아 한국 독립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함께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도 의미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지점도 있습니다. 영화의 호흡이 지나치게 느려 일부 관객에게는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은영이라는 인물의 귀환이 서사적으로 충분히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또한 동성 연인이라는 설정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아, 퀴어 영화로서의 의미가 다소 희석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웨이브와 티빙에서 볼 수 있습니다. 빠르고 자극적인 영화에 지친 분, 자연 속에서 조용히 숨 고르고 싶은 분께 특히 추천합니다. 단, 무언가를 기대하고 보시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냥 화천의 공기를 마신다는 마음으로 보시길 권합니다.
〈정말 먼 곳〉을 보고 나서 오래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어딘가 정말 먼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가봤자 나를 기다리는 것들이 그대로일 거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드는 영화였습니다. 좋은 영화는 그렇습니다. 답을 주지 않고, 대신 오래 생각하게 만듭니다.